과거에 머물지 않고 길을 걷고 싶은 자폐당사자로서

맑은센터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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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머물지 않고 길을 걷고 싶은 자폐당사자로서

타성에 젖지 않는 삶을 위한, 익숙지 않은 자극을 접한다는 것

  •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세이
  •  
  • 입력 2024.07.3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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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때로는 험한 산길과 같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 pixabay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때로는 험한 산길과 같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 pixabay

다소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겠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전진할 길을 찾기 위해 한 번 지난 과거 수년간을 떠올려 최종판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해 보았다.

다른 당사자 분들도 그러신 경우가 많겠지만, 나 또한 수년 전 자폐 특성을 비롯한 각종 정신적 장애에 대한 첫 진단을 받았던 여러 날들이 아직 생생하다. 그 때들을 계기로 정체성을 형성해 본격적으로 자조모임 활동을 찾아서 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나는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의 창립멤버이자 임원으로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그간 하지 않았던 단체 활동과 운동(movement)을 한다는 건 익숙지 않은 자극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일도 많았다. 내 자폐 특성으로 인해서, 그간 적응된 환경을 벗어난 새로운 자극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는 좀 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를 다시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충분히 완벽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을 드러내기도 꺼려하던 성격을 바꾸려 노력하고, 당장의 헤매고 서툰 모습에 솔직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또 배워서 알고자 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천천히 책과 글을 찾아 읽기도 했다. 이어 동료들을 지켜보며 함께 탐구하고 일하는 경험을 쌓아갔다.

그렇게만 할 시간은 그리 넉넉히 주어지진 않았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공부만 할 시간 말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자폐 당사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히트로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자폐 특성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하고, 이 시기에 열린 제2회 오티즘 엑스포(Autism EXPO)에서 내가 했던 인터뷰와 발표문이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발표문은 사전에 준비했던 터라 그나마 나았지만, 인터뷰는 당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첫 경험이다 보니 많이 떨게 되었다. 의도한 바를 유창히 말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내 의도와 다르게 언론에 헤드라인이 나갔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언론에 나온 이후, 또 다른 언론사에서 미등록 자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 인터뷰 내용 일부가 또 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제2회 오티즘 엑스포에서의 발표문과 그로 인해 이어진 인터뷰는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등록 자폐인에 대한 가시화를 주장하고 원하는 다양한 소속, 계층의 사람들에게 종종 인용되고 있다. 그만큼 이 이슈에 대한 당사자의 이야기를, 활동을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나였건만, 이때를 계기로 나는 정신적 장애를 언론과 대중에 공개하고, 본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나서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회는 결코 하지 않으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한편, 내가 그렇게 했던 것에는 아무 뜻도 없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돌이켜보면 그것은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신경다양인 당사자 활동가로서의 앞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고는 늘 생각했으면서도, 시간이 흘러 이제 과거가 된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미등록 자폐 담론마다 소환되듯 인용되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 은연 중의 심적 부담을 나는 익숙한 과거에 머무르는 듯한 태도로 승화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폐 당사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새로운 자극을 접하는 게 어려운 일인 경우가 많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민감한 감각의 영향으로 스트레스를 쉽게 받기도 하고, 경험뿐만 아니라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소통의 방식이 NT(신경전형인)와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할 것이다. 결국, 상대가 나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미리 체화하게 된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이제야 속이 조금 후련한 느낌이다. 앞으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과거의 장황한 서사는 이만 과거의 시간에 보관해두고, 지금 이 시간 정신적 장애인과 신경다양인에게 필요한 인권을 말하는 현재에 충실하며 전진하고 싶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운동(movement)을 비롯하여 눈 앞에 살아낼 삶은 지금도, 앞으로도 많고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의 나 자신과 내 삶을 사랑하고 집중하려 한다. 나를 통해 다른 당사자에게 긍정적이고 새로운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도 삶의 의미가 되고, 나와 당신, 우리의 험난한 지난날들을 진정으로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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